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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나무 밑 스코필드

 평화로운 들판 영국군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분대장이 쉬고 있던 블레이크 깨워 대장이 찾는다고 말하며 같이 갈 병사 한 명을 정해 같이 지휘실로 가라고 한다. 블레이크는 가장 가까운, 가장 친한 스코필드를 깨워 같이 가자고 한다. 둘은 지휘실에 도착해 임무를 전달받는다.. 그들의 임무는 공격중지명령을 서부전선을 건너가서 요크셔 연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병사 1600명과 블레이크의 형을 구하러 서부전선을 횡단하러 떠난다.

 

 영화 1917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 ‘참호전’이라는 방어에 특화된 전술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참호, 철조망, 기관총 등의 무기는 점점 전쟁을 치르는 양쪽 모두 참호를 파고 참호를 향해 돌격해 오는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진행시켰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길게 서부전선이 형성되었고, 대부분의 전투가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독일군 참호와 연합군 참호 사이에 넓이 250m 정도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땅, 인간을 죽이기 위한 도륙공장, “No Man’s Land”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의 공간을 두 주인공이 횡단을 합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 불린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그 허무함과 처절함을 더욱 깊게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쟁이 빠르게 종료되었습니다. 유럽의 왕족 대부분이 친척 지간이었기에 서로를 죽이려 하기보다,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에서 끝냈습니다. 또한 제국주의 사회 시스템 아래에서 항복을 하고 승전국 밑에서 귀족이 되어 자신의 삶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무서운 2가지 기술이 발달된 이후였습니다. 하나는 대량생산, 다른 하나는 다수의 사람을 한 번에 교육시킬 수 있는 근대식 교육입니다. 근대식 교육 이전에는 병사 한 명을 훈련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반면, 근대식 교육이 도입된 이후 민간인을 빠르게 군사로 길러내어 병력을 충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량생산을 통해서 값싼 무기가 지급되면서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상상할 수 없이 길어지게 됩니다. 또한 증기선, 기차의 발달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물자가 서부전선으로 모여들어 소비됩니다.

 

 1차 세계대전은 게임으로 잘 안 만들어지는데 이는 교훈이 있는 전쟁을 추리기 어려운 전쟁이기 때문인데, 의미 없이 많이 사람들이 죽어갔고, 뛰어난 전략가가 활약하기 어렵고, 물자가 소비되는 허무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1917에서도 끊임없이 죽음의 기로에서 생존하는 주인공, 그렇게 길고 힘든 여정을 마무리했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은 허무함을 느끼게 합니다.

 

 흔히 전쟁 영화에는 전쟁영웅들이 등장합니다. 획기적인 전략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전략가, 용감하게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우는 전사는 이 영화에 없습니다. 오히려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 스코필드가 등장합니다. 또한 1917은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는 긴박한 전투 장면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보여주는 사망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중에는 허무하게 죽은 주인공의 동료 블레이크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망 장면은 영화에서 극적으로 그려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1917은 주인공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주인공이 허무하게 죽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영화들과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무하게 죽는 주인공을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허무한지 간접적으로 제시합니다.

 

 감독이 전쟁의 허무함을 보여준 영화는 1917이 처음은 아닙니다. 1917 이전 “자헤드 - 우리들 만의 전쟁에서 훈련 중 사람이 죽을 만큼 혹독한 네이비실 훈련을 받고 저격수로 걸프전에 참전한 주인공은 결국 총알 한 발도 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전쟁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복귀합니다. 다른 느낌의 허무함이지만, 2가지 영화에서 모두 주인공은 혹독한 전쟁을 치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과의 싸움, 그들만의 전쟁을 치릅니다. 1917에서도 스코필드는 1600명의 병사를 살리는 삶의 길을 위해 그는 죽음의 길인 “No Man’s Land”를 향해 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죽음에 맞서 생존과 삶을 선택하는 스코필드만의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두 명의 주인공이 폐가에 도착하는 장면입니다. 죽은 강아지, 깨진 창문, 인형, 풀을 뜯는 소, 우유는, 묘한 부조화를 가져다주며 스코필드의 대사처럼 불길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추락하여 불타는 비행기와 화상을 입은 독일군 조종사를 맞이합니다. 조종사를 치료하자는 인간적인 스코필드, 죽여서 편하게 해 주자는 솜 전투를 격은 베테랑 스코필드가 대립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독일군을 살리고자 했던 인간적인 블레이크는 독일군의 칼에 찔려 죽고 맙니다. 꽤나 이른 시간에,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허무하게 주인공이 죽습니다. 이는 사실 처음 장군에게 명령을 전달받을 때 장군의 대사 – “천국으로 가든 게헨나로 가든 혼자가 가장 빠르다” - 로 복선이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 만연한 전쟁에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홀로 남은 스코필드에게 공격중지명령을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임무를 넘어서 친구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저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인공이 죽고 난 뒤에 관객은 남은 주인공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걸 아는 듯이 감독은 스코필드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습니다.. 스코필드는 폐허가 된 프랑스 마을을 지나면서 독일군 병사와 싸우게 됩니다.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며 스코필드와 독일군이 서로를 향해 총을 발사하고, 스코필드는 계단 뒤로 굴러 떨어지며 페이드 아웃이 됩니다. 아까도 주인공이 허무하게 죽었기 때문에 어쩌면 주인공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스코필드는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프랑스 마을은 아직 후퇴하지 못한 독일군 병사들이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스코필드는 삶을 위해 달립니다. 독일군을 피해 숨어 들어간 집에는 프랑스 여인과 아기가 있습니다. 스코필드는 거기서 그가 가지고 있던 음식과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우유를 전달합니다. 그가 훈장을 와인과 바꿔 먹은 것처럼,, 전쟁 속에서 의미 있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 적진을 향해 뛰어가는 병사들과 그 사이를 가로질러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스코필드. 그는 많은 병사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병사들과 다른 방향, 삶의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드디어 대장정을 마치고 메켄지 중령을 만나서 공격중지명령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명령을 전달받은 중령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는 스코필드에게 이제 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라고 이야기합니다.. 메켄지 중령은 이 공격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Last man standing)” 전쟁이 끝난다고 말하며, 다른 방식으로 이 전쟁을 끝내기를 원했습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삶을 위한 스코필드의 여정은 성공했지만, 이 전쟁을 끝낼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스코필드는 영화시작에서와 같은 평화로운 들판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고향에 있을 가족의 사진을 보며 눈을 감습니다. 그의 달려갈 길을 모두 마치고 마치 그를 위해 마련된 금빛동산에서 휴식을 취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하지만 여느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안도가 되거나 기분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처음과 끝의 모습이 대비되며 다시 이러한 참혹한 전투가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1917은 아주 훌륭하게 1차 세계대전 속 처절한 살육 현장이었던 서부전선으로 관객을 끌어드립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몰입을 시킵니다. 그 몰입도를 이용해서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지만, 널려있는 시체,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참혹한 서부전선의 모습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샘 맨데스 감독의 다른 전쟁영화에서도 그렇지만 감독은 전쟁의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자헤드 그들만의 전쟁에서는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을 수료하고, 저격수가 되어 파견 나간 군인이 결국 총알 한 발도 못 쏘고 복귀하는 일이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이긴 전쟁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 한편으로는 매우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1917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스코필드가 금빛동산에서 눈을 감고 쉴 때, 관객들도 같이 편안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으며, 스코필드가 쉬고 있는 금빛동산 뒤편에는 부상당한 병사들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병사들이 누워있다는 사실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전쟁은 허무합니다. 젊음도, 인간적인 모습도, 탄생의 아름다움도 전쟁 앞에서는 모두 허무합니다. 하지만 스코필드는 그런 허무한 전쟁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치인 삶의 길을 찾고 그것을 위해 선택하고 달립니다. 참혹한 1917년의 1차 세계대전 속에서 스코필드와 함께 삶을 위해 달려보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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